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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온 김에 올 한 해 있었던 일들 중 기억에 남는 일을 조금 더 끄적여본다.
올해 8월에 학회 참석 차 일본 삿뽀로를 다녀올 일이 있었다.
평소에 여행을 가더라도 크게 보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사람인지라 삿뽀로에 가면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머리속을 스쳐간 한 가지가 있었다.
일본은 술이 맛있다.
일본에는 웬만해서는 지역별로 맥주 양조장이 있는 곳이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양조장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즉, 그 지역에 가야지만 먹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삿뽀로는 우리가 흔히 아는 삿뽀로 맥주의 원산지이다.
삿뽀로에 가면 맛있는 삿뽀로 생맥주를 원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싱글몰트 위스키를 제조하는 닛카 위스키 증류소가 삿뽀로 요이치시에 있다.
생맥주와 위스키는 못참기 때문에 "학회 일정 이후 반드시 증류소를 방문해야겠다!"라는 마인드로 학회 일정을 마무리 하고, 요이치에 있는 닛카 위스키 증류소에 다녀왔었다.
닛카 위스키 요이치 증류소 (ニッカヰスキー余市蒸溜所)
증류소 투어는 사전에 예약을 통해 갈 수 있고 일본어로만 진행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플을 통해서 영어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현장감 있는 가이드를 듣고 싶었고, 일본어 청해가 되어 오디오 가이드는 따로 활용하지 않았었다.
증류소 가이드 투어는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창립자 소개
- 위스키 제조과정에 대한 소개
- 실제 증류소 투어 (곡물 창고, 발아, 당화, 발효, 증류, 보관고 순서로 투어 했던 것으로 기억함)
- 시음
일본어로 진행되는 증류소 투어에서 들었던 기억으로는 이 다케쓰루 마사타케라는 창업자가 머리를 잘 굴렸던 것으로 이해했다.
닛카 위스키는 다케쓰루 마사타케라는 창업자가 창립한 회사로, 원래 사명은 大日本果汁株式会社 (대일본과즙 주식회사, 다이닛폰 카주 카부시키가이샤)였다.
위스키라는것이 알다시피 숙성 년수가 확보가 되어야 상품성이 생기는 물건이다.
창업 초기에 증류소에서 위스키 스피릿을 팔면서 유의미한 수준의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또한 스피릿들이 충분히 숙성될 때까지 경쟁사들의 눈을 피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때마침 증류소가 세워진 요이치시는 홋까이도에서 사과가 맛있기로 유명한 지역이였기에 사명을 "대일본과즙 주식회사"로 지어 사과주스를 팔았다고 한다.
이렇게 초기에 사과주스를 팔면서 유의미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며 경쟁사들의 의심을 피한 "대일본과즙 주식회사"는 추후 일본의 일(닛)과 과즙의 과(카)를 따와 닛카 위스키가 된다.
현재는 아사히 그룹의 자회사가 되어 있지만 그래도 옛날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증류소인 것 같았다.
Fig. 1은 실제 위스키 증류소 투어를 돌면서 찍었던 사진이다.
실제로 증류를 할 때 사용하는 증류기들로, 중간에 있는 작은 증류기가 창립자 시절 때 부터 존재했던 증류기라고 했던 것 같다.
현재는 용량이 작아서 다른 큰 증류기들로 증류를 한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해당 증류기들은 평소에는 증류 작업에 사용되기 때문에 항상 불을 피우고 있다고 한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때마침 1년에 몇 번 없는 정기점검을 하는 시즌이라 불이 꺼진 증류기를 보았는데, 아주 신기했다.
요이치 증류소에서는 직화 방식 증류를 택해서 강한 불로 증류를 한다고 하는데, 위스키를 먹을 때 스피릿을 어떻게 뽑았는지에 따라서 술 맛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해봤었다.
직화 증류로 얻은 스피릿으로 만든 위스키는 아래에 시음 관련해서 다시 이야기 해보겠다.
가이드 투어는 이 정도로만 기술하고, 술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시음 술은 "애플 와인", "슈퍼 닛카", "싱글몰트 요이치"로 구성이 되어있다.
앞서 언급했던 내용들 중, 요이치시는 "사과가 맛있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닛카 증류소에서 애플 와인도 판매하고 있었고, 시음에도 함께 구성이 되어있었다.
이 애플와인, 물건이다.
이 와인은 그냥 와인이 아니다. 주정강화 와인이다. 도수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와인에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를 섞었다.
풍미와 밸런스가 미친 술이다. 삿뽀로에 갈 일이 있다면, 혹은 닛카 위스키를 방문할 계획이고 2박 3일 이상 삿뽀로에 있을 예정이라면 반드시 한 병 사서 품에 안고 가야한다. 국내에 들고갈때는 관세가 걱정이니 일본에서 다 마시고 위에 넣어 와라.
"슈퍼 닛카"와 "싱글몰트 요이치" 이 녀석들도 맛이 있었지만 벌써 투어를 다녀온지 3개월이 넘어가고 있기에 정확한 맛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료 시음
투어가 끝난 이후에는 유료 시음을 즐길 수 있다.
우선 처음으로 닛카 위스키를 대표하는 key malt를 먼저 시음해보았다.
요이치 증류소에서 유료시음을 했지만 미야기 증류소의 key malt들도 맛 볼 수 있었다.
Key malt란 해당 위스키 증류소에서 나오는 핵심적인 싱글 몰트 위스키들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키 몰트를 이용해서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시음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시음 금액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앞서 증류 방식에 대해 설명을 할 때 요이치 증류소는 직화 증류 방식을 통해서 스피릿을 뽑아낸다고 했었다.
반면, 미야기 증류소에서는 용어가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간접 증류를 통하여 스피릿을 뽑아낸다고 가이드 투어에서 이야기를 들었었다.
이러한 증류소 간의 스피릿 추출 방식 차이는 숙성된 위스키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요이치 증류소의 위스키에서 전반적으로 스모키한 향이 매우 강하게 느껴졌다.
반면 미야기 증류소의 키몰트들에서는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첫인상과 피니시가 공통적으로 느껴졌다.
증류소를 불문하고 각각의 키몰트는 확실히 각자의 개성이 충분했다.
닛카 위스키가 피트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양조장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요이치 증류소의 위스키들에서는 피트 위스키의 느낌보다는 스모키 위스키의 느낌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물론 스모키한 첫 인상 끝에 피트 위스키 특유의 향이 은은하게 올라오지만, 첫 피트 위스키를 라프로익으로 접한 나에게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특유의 스모키함과, 각각의 key malt에 적혀있는 특징적인 맛들이 잘 어우러져 밸런스 자체는 좋은 위스키였다.
스트레이트로 마시다가 어느정도 끝이 보인다 싶으면 미즈와리로 먹는 것을 추천한다.
미즈와리를 하면 스모키한 맛이 어느정도 잡히면서 위스키에 있는 특징적인 향들이 조금 더 부각되면서 새로운 위스키를 먹는 느낌이 든다.
앞선 시음을 마무리 짓고, 부시밀과 닛카 싱글캐스크 몰트 위스키 10년산을 시음했다.
부시밀은 정확히 어떤건지 모르고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마셔봤는데 내 취향은 영 아니였다.
반면, 닛카 싱글캐스크 몰트 위스키 10년산은 이 곳에 방문하면 꼭 맛보고 가기를 추천한다.
10년산은 내가 찾아봤던 바로는 양조장에서만 팔고, 양조장에서만 먹어볼 수 있다.
다른 곳들에서는 팔지도 않고, 마셔볼 수 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기념품 샵을 시음을 한 이후에 방문했는데 부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오전 첫 번째 타임에 가이드 투어를 예약하고 투어가 끝나자마자 기념품 샵에 달려가서 10년산 싱글캐스크 위스키를 꼭 사는 것을 추천한다.
나도 "맛은 보고 사야지"라는 생각이었는데 맛을 보고 반한 순간, 내가 살 수 있는 싱글캐스크 위스키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었다.
저 10년산 위스키를 사오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맛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당시에 맛봤던 유료시음 술 중에 제일 밸런스가 잘 잡히고 맛있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마침글
닛카 증류소를 다녀온 지 벌써 4개월이 다되어 가는 지금이지만, 지금이나마 그 때의 좋은 기억들을 기억하고 싶어 글을 작성해보았다.
삿포로 시내에서 거리는 꽤 있어, 여기를 방문하려면 하루를 꼬박 다 써야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애주가들이라면 방문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아래 두 가지만 명심하라.
- 애플 와인을 사서 여행 내내 품에 지니고 마셔라. 탄산수를 타먹어도 맛있고 스트레이트로 먹어도 맛있는 가성비 미친 술이다. (기억에는 700 ml 한 병에 2000엔이었던 것 같다.)
- 꼭 오전 첫 번째 타임에 방문해서 투어가 끝나자 마자 기념품 샵으로 달려가서 10년산 싱글캐스크 위스키를 구입하라.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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